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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자리의 알파 별, 알데바란. 겨우 알아먹을 수 있을 만큼의 악필로 적힌 과제 메모를 보며 모리아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별들의 배열을 별자리라 이름 붙이며 모양을 만들어낸 것마저 반쯤은 억지라고 생각한 마당에, 고작 돌덩이에 신화나 전설마냥 헛된 이야기를 갖다 붙인다고 재미를 느낄 리 없음이다. 천문학에 흥미가 없는 것은—물론 다른 모든 수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나—그 때문이었고, 더하여 수업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 가만히 올려다보길 좋아했던 밤하늘마저 싫어질 지경이었다. 허나 이러한 이유로 절대 과제 따위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모리아티는 기숙사 휴게실에 앉아 꼭 과제를 시작하기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그래도 과제는 제출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말과 함께 제 것이라도 베끼라고 양피지 뭉치를 안겨주던 후플푸프 동기 때문이었다. 무얼 이리 바리바리 주나 했더니 자기 과제를 그대로 건네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이렇게까지 공짜로 굴러 들어왔는데 그냥 돌려주는 것도 손해 아닌가 하는 모리아티의 거지근성이 내면에서 고개를 든 것이다. 제가 날이 추워 벽난로 땔감으로라도 쓰면 어쩌려고 정성들여 완성한 과제를 이리 쉽게 빌려주는지. 이 학교 아이들이 왕왕 가진 놀라울 정도의 호구력에 감탄하며 모리아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학생이 친절함에 앞서 간과한 것은 떡하니 완성된 과제를 베껴 쓰는 것마저 모리아티에겐 힘든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럴 거면 그냥 과제를 하나 더 해서 주지. 날로 먹으려 해도 그럴 수는 없을 생각을 하며 모리아티는 세 번째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읽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직 글자를 쓰는 것은 말 그대로 문자를 그리는 것에 가까워 이 분량 전부를 베끼는 건 밤을 새도 안 될 일이다. 모리아티는 정확하게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글씨 크기를 최대한 크게 하여 양피지 한 장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맨 문저 제목을 쓰기로 했다. '알데바란'. 동기의 과제에는 '황소자리의 알파 별, 알데바란에 대해 알아보자.' 라는 그럴듯한 제목이 붙여져 있었지만 너무 길었다. 원래 요점이 중요한 거지, 하고 합리화하며 본문으로 들어간다.
도서관의 책 몇 권을 통째로 참고하기라도 한 건지 알 수 없는 숫자들과 단어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는 첫 장을 읽을 생각도 없이 넘기자, 두 번째 장 첫머리에 그나마 쓸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이 보인다. '알데바란이라는 이름은 아랍어 뒤따르는 자(الدبران)에서 유래되었다.' 깃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휴게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와 섞여 딱 잠들기 좋은 백색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그 짧은 문장을 쓰는 동안 잠이 왔다는 소리다. 알파벳보다 몇 배는 오랜 시간을 들여 아랍어를 그리고 나자 벌써 십오 분이 흘러 있었다. 잠이 아까보다 더 온다. 알데바란이 속한 황소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걸려 대충 옮겨쓰고 나니 딱 한 줄 정도 쓸 자리가 남았다. 이젠 정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시간을 써가며 열심인지 가벼운 우울감을 맞으면서도 마지막 줄을 마무리할 내용을 찾기 위해 양피지 더미를 뒤졌다. 동기가 준 과제의 마지막 줄은 '알데바란에 대해 찾아보는 동안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여러 가지 별들에 적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밤하늘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 앞으로의 천문학 시간에서 더 많은 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기대된다.' 였으나 모리아티는 이런 거짓말을 그대로 옮겨 적고 싶지는 않았다. 성의 없는—물론 모리아티가 가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였으나 객관적으로는 정성들인 과제처럼 보이지 않을 것임을 본인도 잘 알았다—과제와 어울리지도 않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다 깃펜을 다시 움직였다. '별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한다. 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알데바란으로 충분할 것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 뭔가 버릇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까지가 모리아티의 한계였다.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아침에 돌려줘야 할 동기의 과제를 잘 갈무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리아티는 테이블에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