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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아시어스에게

작상 2018. 7. 23. 01:27

아시어스가 거리를 방문한 지 며칠 후, 그의 집으로 부엉이가 날아왔다. 부엉이는 잠시 아시어스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응시하다가 다시 날아갔는데, 부엉이를 보낸 이가 편지를 쓰는 내내 짜증 아닌 짜증―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올 생각을 하죠? 왔는데 편지만 두고 갈 거면 대체 왜 온 거죠?―을 냈기 때문이었으나 아시어스가 알아챌 수 있는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무지에 최대한 단정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 글씨체.





아시어스 무어에게.


편지는 잘 받았어요. 물론, 그걸 '잘 받았다' 고 말해도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시어스가 귀한 몸 이끌고 직접 이 누추한 거리까지 와 줬다는 것에 대해 아주 감사하고 있으니까 그 점을 걱정하지는 말아요. 지난 해에 편지가 끝없이 반송된 건 아시어스의 잘못이라기보단 차라리 이런 거리에 사는 제 잘못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요.


거리에 대한 감상이 과히 좋지 않았을 것 같지만, 다행히 문 앞에 둔 편지나 음식을 제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내려가는 짧은 시간 안에 가져갈 만큼 재빠른 사람은 많지 않아 다행이에요. 나나 로버트나 그런 짓을 하거든요. 아시어스가 초인종을 눌렀을 때 다행히 로제타나 로버트가 집에 없어서, 초밥은 무사히 방으로 가지고 올라올 수 있었어요. 잘 먹었다는 말을 할게요. 그런 음식을 먹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맛있더라고요. 당신이 직접 낚은 물고기라고 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요리는 혼자 한 게 아니겠죠? 만약 그렇다면 아시어스는 장래에 요리사가 되어도 좋겠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재능이 있는 거니까.


폭탄처럼 쏟아진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적자면, 사실 이건 제 글씨 연습에 굉장한 도전일 것 같지만, 일단 2학년 학교 생활은 그야말로 '무난했어요'. 무슨 의미냐면... 1학년 때처럼 과제도 안하고 자기만 하느라 바빴다는 소리예요. 비행 연습을 밤마다 해서 내년에 있을 퀴디치 선수 선발에선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성취는 없었고요. 마법의 역사와 천문학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그나마 할 만했던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아시어스도 알다시피 교수가 그 꼴이었고, 약초학은 온실이 덥고, 다른 과목은 기억도 안 났어요. 아시어스는 공부를 곧잘 하던가요? 아는 게 없어 잘 모르겠네요.


방학 때는... 에녹의 집에 놀러가는 걸 제외하면 집에서 자기만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호그와트에서의 생활은 잠자리도 편안하고 음식도 훌륭하지만, 시끄러운 아이들 탓에 기가 쫙 빨리거든요. 다시 재충전해야 다음 학기도 활기차게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그보다 무어 저택이라는 말을 들으니 굉장한 부잣집 같네요. 호숫가에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심심하다는 건 곧 조용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여유가 되면 초대해 주세요. 물론 무어 씨가 집 안에서 같이 사는 거라면 이 제안은 금방 취소될지도 모르겠어요. 새의 똥 냄새를 맡고 싶지는 않거든요.


편지를 길게 쓰니 손이 너무 아파서, 이쯤 줄여야겠어요. 잠도 오고요. 세 시간 전에 일어났는데 큰일이라니까요. 안녕!


모리아티 론이.


추신: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와 놓고 얼굴도 안 보고 가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딱히 얼굴을 보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먼 걸음하게 해서 내 탓도 아닌 죄책감이 생겨서 그래요.

추신2: 귀걸이는 잘 받았어요...... 이런 곳에 이런 귀한 물건이 있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닌 것 같으니 어울리는 사람이 될 때까지 잘 보관해 둘게요. 쓰지 않는 게 이상하다면 학기 중에 돌려받고 싶다고 말해 주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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