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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모리아티, 다음 방학에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02
모리아티 론은 방학 들어 처음으로 헬렌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실로 오랜만에, 미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동시에 매우 기묘한 허락이었다. 마치 헬렌 하우스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양 말이다.
"... 로제타와 로버트가 된 기분이네요."
헬렌은 말없이 웃어 보였다. 드물게도 인자한 미소였으나 모리아티가 느끼는 바로는 마냥 차다. 그러니까, '내쫓기는' 기분이었다. 레이디 헬렌은 아무 이유 없이 저를 맡게 된 양육자일 뿐이었고, 친딸에게 느낄 만한 그 어떤 모성도 그녀에게 존재할 리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량의 서운함을 느낀다. 우유를 담은 그릇을 내려놓고 식탁에 얌전히 앉았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올려 묶으며 다음 말을 재촉하듯 눈짓했다.
"빠르면 내년, 조금 느려도 내후년이겠지."
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리아티 론이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된 후부터였으니 만으로 삼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괄목할 만한 변화의 물결이 거리 끝에서 다가온다. 일꾼들이 거점으로 삼은 헬렌 하우스 또한 마지막까지 피할 수 없었다. 반백 년이 넘은 허름한 건물은 모리아티의 기억이 닿는 최초의 순간부터 즉시 철거당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낡은 상태였다. 동시에 위험하기도 했다. 로버트가 마루를 뛰어다니다 한쪽이 푹 꺼져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이 고작 오 년 전 아니던가. 시대를 기리기 위한 기념품으로도 유지되지 못할 가치. 최하층의 시간이란 으레 그렇다. 놀랄 것도 없었다.
03
레이디 헬렌과 모리아티가 함께한 최후의 만찬은 마른 빵조각 두어 개와 블루베리 잼, 그리고 퍼석하니 수분을 흡수한 시리얼이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허나 그는 다름없는 한 세계의 붕괴를 예감한다. 자신의 유년기, 끝없을 것 같았던 좌절의 거리. 열한 살의 소녀는 제가 가졌던 모든 익숙함이 영구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키가 훌쩍 자라 이젠 레이디 헬렌보다 한 뼘이나 크다. 제가 가진 것 중 가장 풍족했던 재산, 시간이 바닥나는 감상.
04
"그래서... 길바닥에서 노숙하라는 뜻인가요?"
실은 헬렌 하우스가 철거된다는 사실은 핑계일 뿐이다. 모리아티는 레이디 헬렌에게 건물에 대한 보상으로 적어도 이보단 훨씬 현대적이고 더 나은 아파트가 주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못해도 여름 동안 저 하나쯤 누일 공간의 여유가 있을 것임도 당연스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공간은 이동할 뿐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둘 모두가 인지했으나 별다르게 단어를 주고받지는 못했다.
필시 로제트와 로버트를 미리 고아원으로 내보낸 것과 같은 이유일 테다.
모리아티는 생각했다. 이래서 싫어, 저 여자는. 입가의 자상을 매만지며 여즉 죄책감을 담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꼭 엄마 같잖아요, 헬렌. 서로를 위해 결코 낼 수 없는 말을 삼키면서 말이다. 당신은 무언가에 속박될 수 없고 나 또한 결코 당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둘 사이에 존재했던 암묵적인 규칙을 깨지 않는 것이, 마지막 순간 그가 상대에게 차릴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언젠가는 정말 미쳐서 입가의 상처로 끝나지 않고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터다.
05
레이디 헬렌이 내민 편지에 적힌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날짜는 이듬해였다.
'아르버트 노스우드 귀하,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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